2024. 4. 10. 19:49ㆍ카테고리 없음
덴마크의 행복이 이상한 이유 (feat. 휘게의 모순)

<출처> 용두사미 YouTube
덴마크의 흔한 생일 축하 케이크에는
신기하게도 덴마크 국기가
장식으로 사용됩니다.
케이크뿐만 아니라 파티 장소,
마당, 쇼핑몰, 거리의 현수막,
마트의 채소 포장지 등
일상생활 어디든
덴마크 국기는 아주 흔하게 보입니다.
재밌는 점은 국경일이나 특별한 날이 아닌
그저 일상적인 날에도
이렇게 국기를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단네브로'라고 불리는 이 덴마크 국기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나 자신들의 국기를
전 국민적으로 사랑하는 덴마크 사회를 보자면
흔히 생각하는 북유럽의 진보적인 이미지를
떠올렸을 때
다소 의아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국기에 대한 집착은 종종
민족주의, 심하게는 국가주의와 같은

이미지를 떠오르게 할 때가 있어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죠.

미국의 소셜 커뮤니티 레딧(Reddit)에서는
왜 덴마크인들은 국기를 이렇게
자주 사용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올라왔고,
많은 덴마크인들이 애국주의나 민족주의와는
상관없는 단순히 즐거움과
축하를 상징하는 문화라고 답했습니다.
이런 모습만 봐도 덴마크인들은
그들의 상당히 잦은 국기 사용에 대해
그렇게 무거운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는 것으로 보이죠.
실제로 덴마크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국기를 사용하는 그 빈도만큼
덴마크인들은 행복과 여유를
누구보다 많이 누린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강력한 복지 체계
최고 60%가 넘는 세율에도
기꺼이 세금을 내는 높은 시민의식을 가진 나라.
2021년 기준 세계에서 가장
남녀가 평등한 나라.
2022년 기준 세계에서 가장
청렴하다고 인식되는 나라.
그리고 무엇보다 매년 행복지수 순위
1, 2위를 다투는 "가장 행복한 나라"
이런 타이틀을 갖고 있는 덴마크 사회를
뒷받침하는 큰 개념 중 하나는

바로 '휘게'입니다.
휘게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소박하고 여유로는 시간.
일상 속의 소소한 즐거움
편안하고 안락한 환경에서 오는 행복을 뜻합니다.

휘게는 2016년 영국의 콜린스 영어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에서
브렉시트에 이어 2위를 차지할 만큼
21세기 들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추운 겨울 스웨터를 입고
심플한 인테리어로 꾸며진 거실의 벽난로 앞에서
핫초코와 수프를 마시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이런 풍경들은
휘게를 상징하는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휘게는 한때 미국 내에서도
하나의 큰 문화적 트렌드로 자리 잡아
향초나 푹신한 커버 등 과 같은
북유럽 스타일 소품들을
판매하기 위한 마케팅 유행어로
사용되기도 했죠.
이렇게 여유로움과 안락함을 추구하며
행복한 나라임을 스스로 자부하는 덴마크는
사회적 신뢰 또한 매우 높은 나라입니다.

옥스퍼드 대학교에 기반을 두고 있는
통계 사이트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을 믿을 수 있다 항목 체크란.
덴마크인들의 73.9%가 "그렇다"라고 답해
전 세계에서 신뢰도가 가장 높은 나라임을
확인할 수 있죠.

"덴마크 사람들처럼"
의 저자 말레네 뤼달은
덴마크 행복의 비결은 바로 이런
사회적 신뢰 때문이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서로 용납하고 포용할 것 같은
덴마크 이미지와는 다르게
이외의 모습도 덴마크엔 있습니다.

덴마크의 명문대를 다니는 엘리트
덴마크인이라도
이민자의 후손이면
디스코텍에 출입하지 못하는가 하면
고학력의 여성이 히잡을 썼다는 이유로
일자리에서 거부당하고,
법학도 청년은 아랍 계통이란 이유로
거주할 아파트를 구하지 못합니다.
최근 축구선수 '조규성'씨의 소속팀에서는
한국 관중을 향한 인종차별 사건이 발생해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행복을 사랑하고 서로를 가장 신뢰한다는
휘게의 나라 덴마크는
왜 타 인종에 대해서 이렇게 배타적이며,
인종차별이 멈추지 않는 것일까요?
온 나라에 꽂히는 덴마크의 국기 '단네브로'는
그저 순수한 즐거움을 위한 상징일 뿐인 걸까요?

덴마크는 북유럽에서 단연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였습니다.
스웨덴에게 그 패권을 빼앗기기 전까지는 말이죠.
1397년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가 칼마르 동맹이라는
하나의 동군연합 체제로 합쳐졌을 당시만 해도
세 나라의 맹주는 덴마크였습니다.
하지만 스웨덴이 독립을 이뤄내면서
126년간 덴마크가 이끌던 칼마르 동맹은
해체되게 됩니다.
이후 스웨덴은 급속히 강대해졌지만,
덴마크는 그 국력이 서서히 쇠퇴해갔습니다.
중요한 분기점이 된 것은
중세와 근대를 나누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가톨릭과 프로텐스탄트와의 종교전쟁
"30년 전쟁" 도중 일어났습니다.
덴마크는 30년 전쟁에 참전해 연이은 승리로
점차 강대국이 되어가는 스웨덴을
견제하기 위해

스웨덴의 발트해 무역에 있어 중요한 경로였던
외레순 해협의 통행료를 과도하게 인상하거나
스웨덴의 적인 로마 가톨릭 측에 접촉을 시도하거나
외교를 방해하는 등 지속적으로
스웨덴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참다못한 스웨덴은 결국 덴마크를 침공하며
토르스텐손 전쟁을 일으켰고,
이 전쟁에서 덴마크는 스웨덴에게
패배하고 맙니다.

그 결과, 1645년 브룀세브르 조약을 통해
광대한 영토를 스웨덴에게
넘겨주게 되었죠.
바야흐로 스웨덴이 강대국이 되고,
덴마크는 대국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덴마크의 수난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이라는 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바이킹 시대 때부터
덴마크의 통치를 받으며,
줄곧 덴마크계 사람들이 거주해온 지역이었고
반면 그 밑의 홀슈타인은
역사적으로 신성 로마 제국과
독일 연방의 가입국으로
독일계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었습니다.

1460년부터 이 두 지역은
덴마크의 왕인 크리스티안 1세가
통치하는 곳이었죠.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역은 민족과 언어
모두 달랐음에도
덴마크의 통치라는 큰 틀 안에서
잘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19세기 경부터 유럽은
민족주의와 자유주의의 개념이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상 그전에는
내가 어떤 '민족'이고
어떤 '국가'에 귀속되어 있다는 의식
국민과 국가가 하나라는 국민국가 개념이 희박했죠.
하지만 프랑스혁명으로
근대적인 '네이션'의 개념이 탄생했고,
이 이념은 나폴레옹 전쟁을 계기로
전 유럽에 수출되었습니다.
막강한 나폴레옹의 프랑스에 정복당한 국가들은
민족의식과 국민 의식의 각성을 촉구하는
내셔널리즘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죠.
이러한 흐름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역도 비껴가지 않았고,
그전까지는 언어와 민족의 차이가 있어도
어떤 국가에
귀속되어야 한다는 의식이 없었지만,
민족주의가 생겨난 후부터는
상황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덴마크의 왕 프레드리크 7세가
1848년
슐레스비히 공국을 덴마크로 합병한다고 선언하자.
독일계 주민이 점차 늘어나던 슐레스비히와
원래 독일계 주민이 대거 거주하던
홀슈타인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이들은 덴마크로부터의 독립과
독일연방 가입을 희망하며
봉기를 일으켰고, 이는 두 번에 걸친
슐레스비히 전쟁으로 이어지게 됐습니다.
덴마크는 2차 슐레스비히 전쟁에서
막강한 군사력의 독일에 패배하고 말죠.
이 패배로 덴마크는 1864년
빈 조약을 맺고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역을 모두
프로이센에게 넘겨주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덴마크는
국토의 1/3과 인구의 40%를 잃게 됩니다.
프로이센에게 광대한 국토와 인구를 빼앗긴
이 비극적 사건은 덴마크에게
집단적 트라우마로 남게 됩니다.
이렇게 실의에 빠져있던 덴마크 국민들 앞에

2명의 인물이 나타났습니다.
1명은 군인 장교 출신의 부흥 운동가인
엔리코 달가스.
그는 바깥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되찾자는 구호로
유틀란트 서부의 황무지를 풍요로운 토양으로
개간하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이 작업은 뒤이어 시작된 덴마크 부흥의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또 한 명의 인물은 종교 교육 사상가인
니콜라이 그룬트비.
덴마크인들의 자부심이 땅에 떨어지면서
정치적 엘리트들은
자신이 가진 문화나 언어에 대해서는
하찮게 여기고 독일, 프랑스 문화에 전념.
반대로 덴마크 언어와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며 살아간 이들은
바로 '평민'들 이었습니다.
이런 어두운 상황에서
나라를 다시 일으킬 수 있다는 믿음은
바로 '평민'들에게 있다고 믿었고,

최초의 민중고등학교 설립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룬트비는 평민성, 평등주의의
의미를 담은 개념인

폴켈리드를 강조했습니다.
평민적인 삶에 바탕을 두는 것이
덴마크적인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엔 중요한 포인트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가 강조한 평민이란,
공통의 역사와 모국어, 공유된 기억
그리고 공통의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의미를 함축하는 개념이죠.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되찾자"는
달가스의 구호와 함께
민족의 역사와 모국어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 민족주의적 교육 철학을 통해
평민들을 계몽하기 시작한 덴마크는
가장 암울했던 시기를 지나
19세기 후반부터 황금기를 맞이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족주의적 맥락에서
평민성을 강조한 그룬트비의 교육 철학은
현대 덴마크인들이 국가를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것은 휘게 안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갔죠.
누가 봐도 돈이 많은 상류층 부부인

빅토르와 로네.
하지만, 이 부부가 자신들을 소개할 때는
늘 중산층이라고 말합니다.
베를린으로 온 가족이 휴가를 떠나는 날.
8성급 힐튼 호텔에서도 머물 수 있는
경제력이 되면서도 굳이
값싼 호텔을 예약하며
이렇게 '휘게'스러운 게 좋다
말합니다.
하루 종일 걸리는 넓은 집을 청소하는 날
청소 가정부를 들일 수 있는 경제력이 되면서도
굳이 아이들과 함께 청소를 하면서
가족이 청소를 다 같이 하는 것이
'휘게'스럽고 좋다
라고 말합니다.
언뜻 보면 휘게의 이런 검소함과 겸손함은
참 보기 좋은 문화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묘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 안에는 사치스러움에 대한 반대가
은연중에 내포되어 있습니다.
휘게는 저자세적이며 친근한
사람을 사귀는 사회활동의 형태인데

중산층적이고 평등주의적인 덴마크인들의
세계관에서는 신분 지향적이고,
미적이며, 소비를 상징하는 것들은
휘게의 가치를 손상시키는 것으로 봅니다.
휘게에는 '자랑함'이 들어가서는 안됩니다.

그렇기에
내가 남보다 특별하다는 행동으로 보일 수 있는
사치적인 것들은 '금기시' 여기게 됩니다.
이는 덴마크 사회를 통제하는
하나의 룰이 됩니다.
그리고 그 룰은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느끼지 않는
그런 '겸손함'을 사회적으로 요구하게 되죠.
그렇다면 누군가
이런 휘게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벤츠'를 구입한 사람은
가족에게 비아냥을 듣고

원하는 집을 찾았어도
수영장이 딸려있다면,
구매를 포기하는가 하면
덴마크 친구들에게 자신의 아들이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 자랑하자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합니다.
비싼 자동차를 즐기던 한 기업가가 파산하면
언론들은 득달같이 조소하는 기사를 싣습니다.
휘게의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낭만화되는 반면
그 밖의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열등하게 되어버리죠.
휘게는 어느새 강압에 가까울 정도로
규범적인 사회적 재갈이 된 것입니다.

덴마크는
폭력으로 영토를 빼앗긴 비극 속에서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내부를 현대화시키면서
행복한 선진국으로 거듭났고,
평등주의에 기반한 그들만의
휘게 문화를 만들어냈습니다.
휘게의 틀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는
더욱 결속하고 신뢰하게 되죠.
이 휘게가 같은 언어와 역사
관습을 공유하는 '평민성' 즉,
민족주의적 성격을 함께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러한 휘게를 공유할 수 없는
그 바깥에 있는 그룹은 어떨까요?

2018년 덴마크는
이른바 '평행 사회'를 피한다는 명목으로
'안티 게토' 법을 제정했습니다.

평행 사회는 특정 이주 집단이
주류사회에 편입하려는 노력과
접촉이나 교류를 바라지 않고,
주류사회와 사회문화적 평행선을 그리듯이
고립적이고 폐쇄적인
외딴섬을 만들어낸다는 가정에서 나온
그런 개념입니다.
이는 사회적 갈등의 책임 소재를
이주 집단으로 돌리고
이들을 사회와 통합하려는 의지가 없는
집단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씌우는
기능을 합니다.
덴마크는 비서구권 인구가 50% 넘는 곳 중에서
실업률, 교육수준, 범죄율, 소득수준이
일정 수준에 미달하면
해당 지역을 취약지역 '게토'로 지정했고,
'덴마크적인 것'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2030년까지 이런 '게토'들을
없앤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2021년엔 그 연장선으로
'게토'란 말을 쓰지 않는 대신
10년 내로 공동주택에서 비서구권 인구를
30% 줄인다는 정책을 발표했지요.
수많은 비백인 덴마크인들이
자신들이 살던 집과 땅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덴마크에서 나고 자란 이들의
여느 덴마크와 다를 곳 없는 삶의 터전은
민영화로 재건축되면서 해체되고 있습니다.

황당하게도 2022년에는
이 정책으로 비워진 공동주택에
우크라이나 난민은 받을 수 있도록
정책이 수정되면서
안티 게토 정책이 인종차별적이라는 것이
더욱 분명해졌지요.
덴마크 정부는 유럽 사법재판소에
인종차별 혐의로 기소되었고,
나라 안팎으로 엄청난 비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갈등 상황을 최대한 피하고
의례적인 편안함을 최대한 유지하려는
휘게로 인해
이러한 인종차별을 심각한 문제로
다루려고 하지 않는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나치의 제스처나
흑인을 비하하는 단어도
그저 '즐거움' 중 하나로 치부되죠.
덴마크의 역사학자.
마티아스 단볼트는
이런 현상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누군가 문제를 지적하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으로 프레임이 씌워지고
곧 그 사람이 문제가 된다.
휘게 레이시즘
이라는 용어로도 불립니다.
이 때문에 좀처럼 인종차별은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지 않고,
당연히 이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이려 하지도 않습니다.
자, 그럼 이제 축제와 행복의 상징으로

휘게를 즐기는 행동으로써
온 동네에 단네브로를 흔드는 덴마크의 문화는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극단적인 민족주의는 휘게의 성격과
배치되기 때문에 표면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죠.
하지만 영국의 사회학자
리처드 젠킨스는
덴마크의 민족주의의 특징이
스스로 민족주의라고 인식하길 거부하는 것이라
지적했습니다.
행복과 평등성을 상징하는 휘게는
그룬트비가 강조한
진정한 의미의 평등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요?
휘게 안에 있는 행복은
순수한 행복일까요? 사회적 강박일까요?
<출처> 용두사미 YouTube